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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에 초졸… “이젠 어깨 쫙 펴고 이름 써”

89세에 초졸… “이젠 어깨 쫙 펴고 이름 써”

생애 첫 졸업장 받은 안병일씨

지난 17일 열린 울산시민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생 안병일씨가 가족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안씨는 89세 나이로 생애 첫 졸업장을 받았다./울산교육청

“뭐랄까?… 새로운 세상이 열린 느낌?(웃음)”

지난 17일 울산시 중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울산시민학교 제7회 초등 졸업식’에서 생애 첫 졸업장을 받은 안병일(89)씨는 “졸업식 전과 후의 세상이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그전에는 글을 몰라 은행이나 병원에 가면 쭈뼛대기 일쑤였다. “이름, 주소 좀 대신 써달라”고 부탁하기가 어려워 입이 떨어지지 않곤 했다.

어엿한 쌈밥집 사장님인데 계산대 앞에만 서면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계산기에 뜨는 글자를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버스 노선을 못 읽어 어떤 버스를 탈지 헤맨 적도 있었다.

안씨의 ‘늦은 도전’은 2년 전 시작됐다. 쌈밥집을 아들에게 맡기고 시간 여유가 조금 생겼을 즈음 한 지인이 “한글을 가르쳐 주고 초등 학력도 인정해주는 곳이 있다”고 추천했다. 그는 “‘지금 이 나이에 공부가 될까’ 하는 두려움과 걱정부터 앞섰다”고 했다.

안씨는 1935년생이다. 열 살 때 해방을 맞았고 열다섯 살에 6·25전쟁을 겪었다. 글보다는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더 중요한 시절이었다. 고향인 충북 단양에서 경북 영주시 풍기로 시집을 갔다. 남편이 주물업을 해 형편이 피는 듯했으나, 이내 사업이 망했다.

마흔다섯 때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이후 홀로 4녀 1남을 키웠다. 이른바 ‘억척댁’ ‘똑순이’로 살았다. 주방일을 하던 쌈밥집을 인수해 주인이 됐다. 매일 새벽 시장에 나가 쌈채소를 사고 장을 봤고, 밤늦게까지 밥을 팔았다. 그렇게 평생을 정신없이 살았다.

지금은 자녀와 친·외손주까지 합쳐 자손만 17명이다. 자신이 키운 쌈밥집을 1층에 둔 4층짜리 건물의 건물주이기도 하다. 아들에게 물려준 뒤부터 식당에서는 찬거리 만들 때 손을 보태는 정도만 돕는다.

“글은 몰라도 눈치, 눈썰미로 식당을 운영했고, 아이들도 무탈히 키웠는데 그걸(공부) 못 하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2년 3월 울산시민학교 초등과정에 입학했다. 울산교육청이 운영 지원을 하는 학력 인정 과정이었다. 매주 월·목·금 낮 12시 50분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2년 동안 꼬박 다녔다. 오전 11시쯤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갔다. 40~50분 전 도착해 그날 공부할 내용을 예습했다. 수업을 마치면 집에 와서 1시간가량 복습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학교 다니던 2년 동안은 평소 다니던 절도, 친구들 계모임이나 여행도 모두 끊었다”고 했다.

늦깎이 공부에 열성이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안씨는 “학교 가는 날은 전날부터 기분이 좋았다”며 “아프면 학교에 못 가니까 몸 관리도 철저히 했다”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 요가를 하고 학교를 오가며 걷고 저녁 산책까지, 학교를 가려고 운동을 했다는 말이다.

그래도 89세 나이에 하는 공부가 쉽지만은 않았다. 어깨와 팔이 성하지 않아 연필 쥐기가 힘들었다. 특히 쌍기역 같은 겹받침 쓰기가 어려웠다. 발음과 쓰기가 달라 헷갈리기도 했지만, 획이 복잡하면 아픈 손으로 또박또박 쓰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안씨는 졸업식에서 개근상을 받았다. 지각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는 “담임선생님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잘 가르쳐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며 “내가 쓴 글을 보여주면 ‘우리 할머니 멋지고 대단하다’며 엄지 척을 해주는 손주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안씨는 요즘 새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기분이다. 길거리 간판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고, 자신도 모르게 버스 정류장을 외워 속으로 중얼거린다. 팔, 어깨가 좀 불편한 것 말고는 건강도 별 문제가 없다. 안씨는 “이젠 은행이나 병원, 버스 정류장에서 어깨 쫙 펴고 이름을 적고 주소도 쓴다”고 했다. 그러고는 “90년간 캄캄했던 눈앞에 ‘광명의 길’이 열린 듯하니 어떤 기분이겠어요. 하하” 하며 웃었다.

안씨는 “늦은 나이에 용기를 내 도전한 저 자신이 자랑스럽고, 이렇게 졸업까지 한 것이 더 자랑스럽다”며 “올해는 초등 과정을 한 번 더 배울지, 중등 단계를 새로 배울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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