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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천상의 설원’이 [ESC]

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천상의 설원’이 [ESC]

캠핑의 정석 만항재 차박

정선·태백·영월 경계 1330m 고개
운탄고도 저벅저벅 트레킹 낭만
정선아라리시장 ‘콧등치기’ 별미
새하얀 눈꽃으로 덮인 만항재 정상에 있는 ‘천상의 화원’.

하늘과 맞닿을 정도로 높이 솟은 소나무가 빽빽하다. 눈이라도 내릴라치면 겨울왕국이 되어 순백의 아름다운 설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부담스럽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3㎞ 정도의 탐방로가 마련되어 있고, 대한민국에서 6번째로 높은 산인 함백산 정상까지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우리나라에서 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만항재(고도 1330m) 얘기다.

가는 길 도로 위엔 눈이 없다?
아름다운 설경으로 유명한 곳은 많지만 그중 나는 눈 내린 만항재를 가장 좋아한다. 만항재는 강원도 정선군과 태백시, 영월군의 경계 지점에 자리한다. 만항재는 차를 가지고 수월하게 오를 수 있는 데다, 가는 길 자체가 설경을 만끽할 수 있는 겨울 드라이브 코스로도 부족함이 없다. 해마다 이맘때면 그 어떤 시기보다 잦은 폭설이 내려 온통 새하얀 세상이 펼쳐지니까. 폭설 내린 산길에 운전하는 일이 만만찮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철두철미하게 수시로 제설작업이 이루어진다. 구불구불한 고갯길이라 제설작업이 조금만 늦어져도 사고의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과장하여 말을 보태자면, 오히려 도로 위에선 눈을 볼 일이 없을 정도. 그래서인지 최근 몇년 사이엔 입소문을 타고 설경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주말이면 아예 전세버스를 대절해서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지만, 접근성이 좋고 볼거리도 다양하다는 소문에 일반 관광객들에게도 인기 만점이 된 것이다. 주말에는 조금만 늦어도 도로변이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이유다.

이번엔 만항재 폭설 예보를 듣고 일찌감치 출발했다. 늦은 오후, 조양강변에 자리한 정선아라리공원에 도착했다. 반려견들과 함께 아라리공원 일대를 둘러보고, 조양강변도 천천히 산책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기까지 왔으니 정선아리랑시장은 놓칠 수 없다. 맛집들이 즐비한 곳이니만큼 선택이 쉽지 않다. 먼저 콧등치기로 유명한 회동집으로 향했다. 콧등치기는 강원도 정선의 향토음식 중 하나로 국수가락이 억세서 먹을 때 콧등을 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콧등국수라고도 부른다. 뜨거울 때 먹기 때문에 코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고 하여 콧등튀기라고도 한다고. 가게에 둘러 앉은 동네 주민들은 국수가 하도 맛있어서 후루룩 정신없이 먹느라 콧등에 면치기를 해서 콧등치기라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강원도 정선 ‘회동집’의 콧등치기 국수.

나는 콧등치기 한 그릇과 수수부꾸미 1인분을 주문했다. 여기에 막걸리 한 잔 더하면 기가 막히겠지만, 차박을 하려면 해가 떨어지기 전에 만항재로 이동해야 하므로 물 한 잔에 아쉬움을 달랬다. 구수한 국물에 탄력 있는 면을 한입 가득 밀어 넣어 후루룩 먹는 맛, 콧등치기는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달착지근하고 쫀득쫀득한 수수부꾸미는 입안에 착착 감기며 먹는 중에도 내내 침샘을 자극했다. 차박 여행의 묘미란 이런 것. 현지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두루두루 구경도 하면서 한갓진 기분으로 여행을 즐겼다. 다음엔 부모님을 모시고 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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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걷는 맛
해가 떨어지기 전에 만항재에 도착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의 세계를 만나려면 만항재에서의 차박이 정답이다. 만항재 쉼터 주차장 한켠에 차를 세웠다. 차 안에 평탄화를 마치고 전기매트 온도를 높였다. 무시동히터는 이내 차 안의 냉기를 없애고 따뜻하게 공간을 데워 주었다. 든든한 저녁 식사도 잘 마쳤고, 따끈하고 아늑한 공간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있노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잠이 스르륵 들려는데, 보닛 위로 사각사각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눈 닿는 소리에 제법 무게감이 느껴졌다. 다음 날 새벽이면 근사한 설국이 펼쳐져 있을 것이었다. 제설차량 소리에 잠이 깼다. 도로변을 부지런히 오가는 제설차량 덕분에 주요 도로는 눈이 쌓일 틈이 없었지만, 만항재 쉼터 옆길은 여지없이 예외다.

밤새 내린 눈이 기대보다 더 많이 쌓여 근사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반려견 겨울과 바다는 차에서 용수철 튕겨 나오듯 뛰쳐나왔다. 아직 여명으로 희미한, 아무도 없는 새벽의 만항재는 순백의 왕국 그 자체였다. 반려견과 함께 즐기는 설경이라면 운탄고도가 최고지. 운탄고도는 함백역에서 만항재까지 닿는 약 40㎞의 산비탈 임도다. 1980년대까지는 실제로 석탄을 실어 나르던 길로, 그 이름도 운탄고도. 겨울·바다와 나는 만항재에서 밤을 보냈으므로 역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주차를 만항재에 했기 때문에 설경을 즐긴다는 기분으로 하이원리조트 방향으로 걷고 원점 회귀하기로 한다. 겨울·바다는 눈밭을 질주했다. 아무도 없는 새벽의 눈밭은 그야말로 우리들만의 천국이다.

만항재 쉼터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만항재 정상까지 와서 ‘천상의 화원’을 놓칠 순 없겠다. 눈이 내려 온통 새하얀 세상이 되었으니 ‘천상의 설원’이라 해도 좋겠다. 밤새 내린 눈 덕분에 설국으로 변한 이곳은 원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봄부터 가을까지는 300여종의 야생화가 계절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뽐내는 곳으로 사계절이 모두 사랑스러운 곳이다. 가지마다 소복이 쌓인 하얀 눈가루, 투명하게 피어난 상고대를 만났다. 어쩌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딱 이맘때 꼭 만나야 할 풍경이겠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차장은 만석이 되어가고, 기어이 갓길로 단체 관광버스들이 줄줄이 주차했다. 우르르 쏟아지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시동을 걸었다. 설국으로의 차박 여행은 주말에도 누구보다 유유자적 여유로웠다.

알아두면 좋아요

1. 눈꽃 트레킹 : 방수가 잘되는 등산화, 등산 스틱, 아이젠, 스패츠(등산화 안으로 눈비가 들어오지 않게 막아주는 장비), 귀마개가 달린 방한모자, 방수가 되는 따뜻한 장갑, 두꺼운 보온 양말과 젖었을 때를 대비한 여분의 양말을 준비한다. 특히, 강원도 겨울 트레킹 때에는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얼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눈 예보가 없어도 아이젠과 스패츠는 필수다.

2. 반려견 동반 : 반려견 인식표, 목줄, 배변 봉투는 반드시 지참하고, 트레킹 시 인적이 드문 곳이라도 리드줄은 보호자와 1m 이내의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

글·사진 홍유진 여행작가
1년의 절반은 타지에 살며 그곳에서의 삶을 기록한다. ‘오늘부터 차박캠핑’, ‘보통날의 여행’, ‘나만의 여행책 만들기’, ‘시크릿 후쿠오카’, ‘무작정 따라하기 오사카. 교토’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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