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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의 석유채굴권 환수…식민지 그늘 벗어나 탈탄소까지?

나이지리아의 석유채굴권 환수…식민지 그늘 벗어나 탈탄소까지?

[한겨레S] 구정은의 현실 지구 최대 규모 셸, 육상 부문 매각 결정 ‘기름 누출’ 피해 해결 요구도 거세 나이지리아, 세계 10위 산유국 환경보전·자립 등 ‘새로운 도전’2011년 12월 셸의 직원이 나이지리아 나이저 삼각주 연안의 해상 부유식 원유 생산 저장·하역 설비 앞에 서 있다. AP 연합뉴스 나이저(니제르·Niger)강. 아프리카 서부 국가인 나이지리아와 니제르의 어원이 된 강이다. 4200㎞를 흐르는 이 강이 대서양의 기니만과 만나는 곳에 비옥한 삼각주가 펼쳐진다. 나이저 델타, 농업의 풍요로움보다는 세계적인 유전 지대로 이름 높은 곳이다. 영국 에너지 회사 셸을 비롯해 다국적 에너지 기업들이 장악해왔던, 토착민들에게는 마음 아픈 땅이기도 하다. 그런데 셸이 나이저 델타 지대에서 벌여온 사업을 접기로 했다. 아프리카뉴스·로이터 등에 따르면 지난달 육상 부문 에너지 탐사와 채굴을 맡아온 ‘나이지리아 셸 석유개발회사’(SPDC)를 르네상스라는 이름의 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셸이 챙기게 되는 돈은 총 24억달러(약 3조2천억원)에 이른다. 매각될 자산에는 육상 유전 15곳과 연근해 얕은 바다 3개 유전이 들어 있다. 물론 이 자회사 자산을 온전히 셸이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나이지리아 국영석유회사(NNPC) 지분이 55%였고, 나머지 지분도 프랑스 ‘토탈에너지’와 이탈리아의 ‘에니’ 등으로 쪼개져 있었다. 다만 운영권은 셸이 갖고 있었다. 서방의 거대 에너지 회사들이 나이지리아의 에너지 자원 개발권을 나눠 갖고 있는 현실, 나이지리아가 이를 점점 국가 소유로 바꿔온 과정을 보여주는 지분 구조다. 반면에 인수자인 르네상스 컨소시엄은 현지 색이 확연히 짙다. 나이지리아 기업 4개가 주요 멤버들이고 외국 자본은 스위스에 본사를 둔 투자 회사 하나만 들어가 있다. 기름 오염 원상 회복에 30년 셸과 나이지리아의 관계는 193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영국의 라이벌 회사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과 함께 벤처를 설립했고, 2년 뒤 나이지리아 육상에서 석유를 탐사할 수 있는 최초의 탐사 면허를 받았다. 1956년에는 나이저 델타의 바옐사주에서 나이지리아 최초의 유정을 시추하는 데 성공했다. 나이지리아의 석유 역사 자체가 셸과 엮여 있는 셈이다. 셸이 현지법인을 파는 것에 대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근 100년 나이지리아 석유산업의 중심에 있었던 회사의 한 시대를 마감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그 100년 가까운 셸의 채굴 역사 동안 기름 유출에 따른 토착민들의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른바 ‘오고니랜드 사건’은 거대 에너지 회사가 개발도상국에서 저지른 환경 파괴의 대명사다. 오고니 부족민들이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셸은 1970년대부터 기름을 누출했다. 1976년부터 15년 동안 기름 누출 사고가 3천건 가까이 일어났다. 오고니족 활동가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셸은 나이지리아의 당시 군사독재 정부를 부추겨 이들을 처형하게 했다. ‘오고니 나인(9)’으로 불리는 이 희생자들 가운데 하나였던 시인 켄 사로위와는 죽기 전 “우리는 역사 앞에 서 있다. 감금도 죽음도 우리의 궁극적인 승리를 막을 수는 없다”는 글을 남겼다. 유족들은 미국과 영국, 네덜란드 등에서 소송을 걸었다. 셸은 관여를 부정했지만 2001년 그린피스가 자료를 공개했다. 셸이 환경운동가를 체포하도록 군에 헬기까지 내줬다는 증거 자료였다. 여러 소송에서 셸은 패소하거나 합의금으로 무마했다. 하지만 사로위와가 예언한 역사적 승리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 2011년 유엔 조사 보고서는 셸과 나이지리아 정부가 오고니랜드의 오염에 책임이 있다며 “지역을 정화하는 데에 길게는 30년, 비용도 10억달러 이상 들어갈 것”으로 추정했다. 셸이 육상 채굴을 포기하기로 한 데에는 이 소송을 비롯해 아직도 걸려 있는 여러 소송들이 영향을 미쳤다. 현지 주민들이 셸의 송유관을 공격하는 등의 사보타주도 많았고, 현지 무장세력들의 공격과 유조선을 노린 해적들까지 기승을 부렸다. 이제는 득보다 실이 많아진 셸은 현지법인을 팔아버리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계약을 마무리하려면 나이지리아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주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외국 기업들이 환경을 망친 뒤 지분을 팔고 떠나버리는 사태다. 셸은 리버스주 남부에서도 이달 초 기름 누출 사고를 일으켰다. 현지 언론 ‘뱅가드’ 등에 따르면 환경단체들은 셸이 나갈 때 나가더라도 먼저 모든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고 있다. 셸이 환경 피해를 해결하지 않으면 정부가 매각 승인을 보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육상 부문만을 팔겠다는 셸의 계획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땅 위의 사업을 팔고, 그 대신 심해 채굴과 가스 생산에 전념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익성이 높고 ‘원주민 문제’가 없는 기니만 심해 사업 등 최소 3개의 자회사를 계속 운영할 계획이다. 그래서 주민들과 환경운동가들은 더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뉴스레터’를 쳐보세요. ☞한겨레신문 정기구독. 검색창에 ‘한겨레 하니누리’를 쳐보세요. ‘자원 개발 독립’ 셸 매각의 상징성 나이지리아에 매장된 석유는 370억배럴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보유량 기준 세계 10위다. 셸의 매각 계획은 거대 에너지 기업이 맞닥뜨린 탈탄소 압력, 개발이익을 되찾으려는 자원 보유국들의 정책 변화, 갈수록 커져온 주민들의 목소리와 환경 정의 등과 맞물려 있다. 1990년대 군사독재를 청산한 이래로 나이지리아 정부는 자원 수익을 늘리기 위한 작업을 계속해왔다. 자원 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외국 기업들이 갖고 있던 채굴권을 현지 기업들로 이전시켜온 것이다. 다른 기업들도 서서히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1950년대에 나이지리아에서 사업을 시작한 미국 엑손모빌도 2년 전 나이저 델타의 석유 사업을 12억8천만달러(약 1조7천억원)에 팔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 역시 규제 당국이 재검토를 요구하면서 아직 거래를 완료하지는 못했다. 이탈리아의 에니, 노르웨이의 에퀴노르, 중국의 아닥스 등이 지난 3년 새 나이지리아 자산을 팔겠다고 발표했다. 나이지리아 석유산업이 내리막으로 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석유 생산량은 2020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며, 작년에는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 자리를 앙골라에 빼앗겼다. 그러나 여전히 석유는 나이지리아의 중요한 돈줄이다. 석유를 팔아 버는 돈의 비중이 줄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국내총생산(GDP)의 5~6%를 차지한다. 그래서 정부와 현지 언론들은 셸의 자산 매각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이제야 식민 시절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2021년 사이에 외국 기업의 주요 자산 매각이 26건 있었는데, 한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주요 외국 기업에서 현지 기업으로 채굴권이 넘어갔다. 비영리기구 ‘이해관계자 민주주의 네트워크’에 따르면, 셸의 매각이 끝날 경우 나이지리아 역사상 처음으로 자국 기업이 외국 기업보다 더 많은 석유개발권을 갖게 된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나이지리아에서 셸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보도도 보인다. 현지 기업들이 기름 유출 사고에 셸보다도 오히려 대응이 느렸고, 석유 추출 과정에서 생산된 여분의 천연가스를 태우는 ‘가스 플레어링’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도 오히려 늘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계속 환경 기준을 높일 것이고 에너지 관리와 기후 대응을 위한 제도를 정비해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환경과 개발, 에너지 자원과 탈탄소, 식민주의와 자립. 그 사이를 헤쳐온 나이지리아의 도전은 성공할까.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신문기자로 오래 일했고,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10년 후 세계사’ 등의 책을 냈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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