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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골목의 경고문에서 목소리를 훔쳐 듣다[이다의 도시관찰일기]

(2)골목의 경고문에서 목소리를 훔쳐 듣다[이다의 도시관찰일기]

고요한 도시 속 분노에 찬 외침, 당신의 경고를 찍겠습니다|이다



“양심! 하늘이 보고 있다. 남의 집 담 너머 왜 버리는고…”

오늘도 새로운 경고문을 발견했다.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이 찰칵- 사진을 찍는다. 흔히 하듯 컴퓨터로 출력한 것도 아니고 손으로 쓴 것이니 더 귀하다. 심지어 경고문을 쓴 곳조차도 범상치 않다. 누가 몰래 버린 의자의 뒷면에 빨간 매직으로 커다랗게 썼다. 처음에 시작하는 “양심!”을 정성 들여 쓴 것이 눈에 띈다. 또 ‘쓰레기’라는 목적어를 과감히 생략해 “왜 버리는고…”를 강조한 것도 재미있다. 이런 경고문은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희귀한 것이다.

도시든 자연이든 주변을 관찰하는 게 취미인 내가 제일 많이 수집한 것이 바로 이런 경고문이다. 후미진 골목에 붙은 것, 고층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것, 쓰레기봉투에 붙은 것, 전봇대에 붙은 것 등등 지금까지 100여개는 모은 것 같다. 이걸 인터넷에 올리는 것도 아니고 모아서 전시를 하거나 책을 내는 것도 아니다.

도시의 큰길에서는 경고문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어쩌다 발견한다고 해도 컴퓨터로 써서 잘 정돈된 것들이라 별로 재미가 없다. 그러다 골목으로 들어오면 사람들이 손으로 직접 쓴 경고문들이 서로 경쟁하듯 나타난다.

경고문 중 가장 많은 것은 역시 담배에 관련된 내용이다. 여기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것과 꽁초를 버리지 말라는 경고가 제일 많다. 흡연 문제는 보통 하루 이틀 계속된 것이 아니다 보니 메시지가 거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마 처음엔 “여기서 담배 피우지 마세요” 정도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다 “여기서 제발 담배 좀 피우지 마세요”가 된다. 그 정도로 효과가 없으면 “여기서 담배 피우면 신고합니다. CCTV 촬영 중”이라고 협박도 해본다. 그러다 결국 분노가 폭발한다. “미친 X. 담 넘어 꽁초 버리면?!! 뒤짐 주의보!!!”



두 번째로 많은 것은 여기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경고문이다. 주로 전봇대 아랫부분이나 주택 담장 옆에 붙어 있다. “이곳에 쓰레기를 절!대!로! 버리지 마세요!” 화단도 예외는 없다. “남의 화단에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 아파트라고 다르지 않다. “음식물 쓰레기를 정해진 장소에 버리지 않고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서 버리시면 가져가지 않습니다. 또한 경비직원이 일일이 음식물을 찾아내야 하고 … 주민 여러분!! 내가 사는 아파트 주변에 악취가 진동하는 음식물을 아무렇게나 버리신다면 … 어느 분이 그러시는지 추적하여 잡을 수도 있습니다.” 흡연 관련 경고문이 주로 분노에 찬 내용이라면, 쓰레기 관련 경고문은 고통과 호소가 섞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외에는 개똥을 안 치우는 사람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있다. “이런 식으로 개똥 처리 안 하시려면 반려견 키우지 마세요.” 화분을 훔쳐 가지 말라는 경고문도 있다. “선인장 가져간 사람 도로 갖다 놓으세요. CCTV 보고 신고하기 전에 갖다 놓으세요!” 요즘은 흔치 않지만, 술집 근처에는 소변 금지 경고문도 있다. (꼭 가위가 같이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 오줌 금지!”

최근에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모 아파트에 붙어 있던 경고문이다. 나는 어디에든 경고문이 있으면 무조건 진지하게 읽어본다. 대부분 비슷비슷해서 읽고 나서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경고문은 달랐다. 무려 차에 침 뱉는 행위를 중단해달라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공적 경고문이었다!

“우리 아파트는 주차 공간이 적어 저녁 일찍 주차할 공간이 없어집니다. 어쩔 수 없이 불법주차하는 차량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차량에 침을 뱉는 행위는 차주의 입장에서 모욕적으로 느낄 수 있으며,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면 분노로 바뀔 수 있습니다. 이를 참고하시어 침 뱉는 행위를 삼가주시길 바랍니다.” 보는 순간 불법주차된 차량과 거기에 누군가가 단전에서부터 가래를 모아 침을 퉤 뱉는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마치 <공공의 적>이나 <범죄도시> 같은 한국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어이, 아저씨! 일루 와봐! 지금 여기 뭐 하셨어?” 험상궂은 인상의 배우를 마음대로 섭외해본다. 나만의 단막극 하나가 뚝딱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경고문을 쓴 적이 있다. 몇년 전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의 한 주택에 살던 때다. 어느 날 맞은편 빌라의 옥상에 뜬금없이 워터파크가 생겼다. 젊은 아빠가 아이들을 위해 옥상에 커다란 간이수영장을 차려 물을 가득 채워놓은 것이다. 파라솔과 의자까지 갖다 놓으니 옥상이 바로 괌이고 발리였다.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마음이 갸륵해 보였다. 매일매일 아이들이 괴성을 지르며 옥상 워터파크를 이용하기 전까지 말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노는 소리까지는 참았다. 마음대로 뛰어놀 골목길도 없고 놀이터도 없으니 이해할 수 있다. 덥지만 창문을 꽉 닫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젊은 아빠가 자기 친구들을 불러 주말 내내 밤새워 술을 마시고 파티를 하자 나의 인내심도 폭발하고 말았다. 당장 컴퓨터를 켜서 궁서체로 엄중한 경고문을 작성했다.

“옥상에서 큰소리로 이야기하면 그 세세한 내용까지 온 동네에 다 들립니다. 아이들이 노는 소리까지는 괜찮습니다. 어른들의 대화 소리를 조금만 낮춰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속마음으로는 “어른들이 너무 시끄럽네요. 작작 좀 하세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반발심이 들지 않도록 최대한 점잖게 쓰려고 노력했다. 그냥 시끄럽다고만 하면 화만 돋우고 효과는 없을 것 같아서 대화 내용이 다 들린다고 프라이버시를 자극하는 말을 일부러 덧붙였다. 그동안 각종 경고문을 보며 습득한 요소를 몸소 써먹은 것이다.

그리고 경고문을 A4용지에 출력해 그 빌라 현관에 테이프로 붙였다. 신기하게도 경고문을 붙이고 오는 것만으로도 화가 풀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복받쳤던 감정을 쏟아낸 것이 후련하기까지 했다. 다행히 경고문이 효과가 있었는지 그 후로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한결 줄어들어 창문을 열고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쓴 경고문이 이룩한 성취였다!

도시를 관찰하다 새로운 ‘경고문’ 발견하면 카메라부터 꺼내 들어 ‘찰칵’
담배·쓰레기·소음 스트레스 참아가며 고민한 심정 담긴 문구에 “화낼 만하네” 공감
어쩌면 나는 문밖으로 터져 나오는 ‘절절한 호소와 감정’을 수집하는 걸지도

그러고 보니 나는 왜 경고문을 보고 재미있어하는 것일까? 경고문은 대개 글쓴이의 입장에서 읽게 된다. 경고문을 쓰기까지 참고 고민했던 사람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게, 여기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되지!” 특별한 사안일 경우에는 사건의 무게와 잘잘못을 따지는 재미도 있다. “화낼 만하네, 화낼 만해.” 경고문은 그 장소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는 시차를 두고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다. 한편으로 나 역시 남들에게 피해 주는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고,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는 저런 개념 없는 짓 안 하지!” 경고문으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될 때도 있다. “분리배출은 검은 봉투 말고 비치는 봉투에 담아서 내놓으세요. 안 그러면 정상 수거가 되지 않습니다.” 이걸 보고 뜨끔해서 그 후로 나도 꼭 투명한 비닐봉지에 재활용품을 담아서 내놓는다.

도시는 의외로 조용하다. 동네에서도 타인과 이야기할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외출을 하고 돌아와도 사람 목소리 한 번 못 듣는 날도 있다. 그런 날에는 왠지 조금 재미가 없다. 하지만 골목에 붙어 있는 경고문은 언제나 말을 한다. 여기서 이런 일이 있었고 나는 너무 화가 난다고, 내가 화내는 게 당연하지 않냐고, 내 마음을 이해해달라고, 정의를 구현하고 싶다고.

어쩌면 나는 경고문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수집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도시의 닫힌 문밖으로 터져 나오는 절절한 호소와 감정들을 말이다.

▲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저서로는 <이다의 자연관찰일기> <내 손으로 치앙마이><걸스토크> 등이 있다. 그림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는 것이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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