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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정적’ 나발니, 옥중 의문사

‘푸틴 정적’ 나발니, 옥중 의문사

러 교도소 “산책 후 의식 잃어
혈전으로 인한 급사 확인” 발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政敵)이었던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48·사진)가 16일 수감 중이던 교도소에서 급사(急死)했다고 러시아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지난해 12월 시베리아 최북단 야말로-네네츠의 연방 교정청 관할 제3 교도소로 이감된 지 2개월 만이다.

교도소 발표에 따르면 나발니는 이날 오전 산책 후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뒤 ‘몸이 좋지 않다’고 알린 뒤 바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나발니는 이감 후 자신의 변호사에게 “몸 여러 곳이 불편하고 아프다”고 호소해 왔다. 교도소 측은 “응급 의료진이 즉시 도착해 심폐 소생술 등을 시도했으나 긍정적 결과를 얻지 못했다”며 “의사가 그의 사망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교도소 측은 그의 사망 원인에 대해 “혈전(血栓)으로 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나발니는 지난 2021년 1월부터 만 3년째 수감 생활을 해왔다. 2022년 횡령과 사기 등의 혐의로 9년형을 선고받았고, 최근 극단주의 조직을 만든 혐의로 징역 19년을 추가 선고받았다. 앞서 지난 2020년 러시아 국내선 비행기에서 독극물(노비촉) 중독 증세로 쓰러졌고, 독일로 후송돼 20일간 의식 불명으로 있다 극적으로 살아났으며, 러시아로 귀국한 뒤 당국에 수감됐다. 당시 러시아 야권과 서방 언론에선 “푸틴 대통령이 나발니를 독살하려 했다”는 추정이 나왔다.

1976년 모스크바 근교에서 태어난 나발니는 러시아민족우호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인권 변호사로 활동해왔다. 2000년 정치에 입문한 뒤 진보당과 러시아미래당 등 야당에 몸담으며 절대 권력자인 푸틴과 러시아 고위층의 비리 및 부정축재 의혹을 폭로하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특히 2011년 대규모로 벌어진 반정부시위를 이끌면서 반(反)푸틴 세력의 중심 인물이 됐다. 2013년엔 수도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 출마했는데, 비록 당선에는 실패했지만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도 속에서 28% 가까운 득표를 하며 푸틴 정권을 긴장시켰다.

그는 푸틴 장기 집권 체제를 종식시키겠다며 2018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러시아 당국은 그가 과거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다는 석연찮은 이유로 출마를 봉쇄해 무산됐다. 이 조치는 오히려 나발니의 정치적 위상을 더욱 드높였다. 이후 나발니에겐 ‘푸틴의 네메시스(nemesis·운명의 숙적)’라는 별칭이 생겼다.

알렉세이 나발니가 생전 러시아 최북단 시베리아 지역의 IK-3(제3 교도소)에 있는 모습. 푸틴 정권의 폭정과 부패상을 신랄하게 비판해온 그는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왔지만, 푸틴이 출마한 러시아 대선을 정확히 한 달 앞두고 의문사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의 투쟁 수단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였다. 그는 자신이 만든 ‘나발니 블로그’를 통해 러시아 정치권의 다양한 부패상을 폭로했다. 이 과정에서 거침없는 언변으로 큰 인기를 끌며 수백만명의 지지자를 거느렸다. 특히 노비촉 테러로 죽다 살아난 뒤 수감 생활 중이던 2022년에도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푸틴의 대저택 내부 사진과 설계도를 공개해 푸틴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다.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를 여러 명목으로 수차례 기소해 투옥하고, 블로그와 소셜미디어 계정을 폐쇄하려 했으나 그때마다 러시아 야권과 시민 단체들의 반발이 일면서 오히려 ‘민주투사’로 부각시켜주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국가들도 나발니를 러시아 민주주의의 상징적 인물로 평가하며 그를 탄압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고위 인사들을 잇따라 제재했다.

우크라이나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그에게는 우크라이나의 피가 흐른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친(親)푸틴 입장에서는 모든 면에서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그는 노비촉 테러 전에도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을 당했다. 2017년에는 괴한이 뿌린 녹색 염료에 맞아 한쪽 눈 시력을 거의 잃기도 했다.

서방 일각에선 다음 달 러시아 대선을 앞두고 나발니가 사실상 ‘암살’됐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2022년 연임 규정을 철폐한 푸틴은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5선째를 기록하면서 최소 2030년까지 권좌에 앉을 수 있다. 또 이를 기반으로 사실상 종신 집권의 문을 여는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까지 이어가려 하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미 러시아 선거관리위원회가 정부에 비판적인 인물의 출마를 잇따라 봉쇄했고, 꼭두각시 후보들만 남아있어 대이변이 없는 한 푸틴의 압승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다만 러시아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반푸틴 정서 결집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푸틴 반대 세력이 그를 구심점으로 해 반푸틴 선전에 나설 경우 푸틴의 당선 여부와 별개로 큰 정치적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그동안 수많은 푸틴의 정적과 반대자들이 의문사를 당했다는 점 때문에 나발니의 죽음에 푸틴이 개입했다는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앞서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위대인 민병대 ‘바그너그룹’을 이끌다 지난해 6월 푸틴을 겨냥해 봉기했던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두 달 만에 석연찮은 비행기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2022년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부정적이었던 러시아 기업인 10여 명이 줄줄이 자살하거나 의문사했다.

2006년 11월 영국에 망명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런던의 한 호텔에서 전 동료가 전해준 홍차를 마시고 숨졌다. 찻잔에서는 방사성 물질 ‘폴로늄’이 나왔다. 2018년에도 전직 러시아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이 영국 솔즈베리에서 노비촉에 중독돼 죽을 뻔한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푸틴이 가장 두려워하던 정적이었던 나발니의 의문사는 앞서의 유사 사건과는 차원이 다른 후폭풍을 몰고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나발니의 의문사 소식이 알려진뒤 서방 국가들은 일제히 나발니를 탄압했던 푸틴을 비난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끔찍한 비극”이라며 “크렘린궁의 반대파 탄압 역사는 길고 추악하다”고 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러시아의 나약함과 부패를 분명하게 보여줬다”고 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X(옛 트위터)에 “푸틴이 자국민의 반대 의견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은 “우리는 모든 사실을 규명해야 한다. 그리고 러시아는 그의 죽음에 대한 모든 심각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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