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스파클뉴스골드스파클뉴스

악마 같은 크레바스를 넘어 셀파니콜을 넘다

악마 같은 크레바스를 넘어 셀파니콜을 넘다

[반갑다 네팔!] 혼곤·마칼루BC~셀파니콜·메라피크 등정 (3)
스위스캠프를 지나 너덜지대를 통과하는 스태프들.
11월 11일 술 마신 스태프들 소란에 잠 설쳐

지난밤 스태프들 몇 명이 술을 마시고 소란을 피웠다. 500m쯤 위쪽에 있는 메릭 티하우스(4,100m)에 다녀왔다고 한다. 술로 피로를 달래는 습관을 좀처럼 버리지 못한다. 운행에 차질을 빚을까 걱정된다.

새벽에 둘러보니 파노라마 뷰가 멋지다. 앞에 있는 돌산의 두 봉우리는 이름이 있다. 왼쪽은 '시바지'로 남자를, 오른쪽은 '파르빠띠'로 임신한 여인을 상징한다. 힌두교에서는 이곳을 신성시해 순례를 온다고 한다.

랑마레 카르카(4,410m)를 향해 출발했다. 길은 좋으나 천천히 컨디션을 조절해 가며 올라간다. 어제 스태프들이 술을 마셨던 메릭 티하우스를 지난다. 그곳에서 조금 올라가면 오르막이다. 돌계단을 잘 만들어 놓았다.

고갯마루에서 티하우스 방향을 돌아보니 노새 10여 마리가 짐을 지고 올라온다. 노새는 산간 마을의 주요 운송 수단이다. 힘이 세고, 지구력이 좋으며, 아무거나 잘 먹는다. 노새들은 빠른 속도로 우리를 추월해 갔다.

랑마레 카르카에 도착했다. 이미 도착한 노새들은 짐을 부리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티하우스의 여주인과 마부는 물품을 꼼꼼하게 체크한다. 캔맥주, 콜라, 식용유, 석유 등 다양하다. 석유는 저울로 무게까지 잰다.

양락카르카(3,557m)지나 야크카르카 캠프지 모습. 가운데 왼쪽은 시바지봉, 오른쪽은 파르빠띠봉이다.
이 노새들은 눔마을~쉐도하~꽁마~양리 카르카~랑마레 카르카~마칼루B.C를 오가며 물건을 나른다. 길고 힘든 여정이나 여유롭게 쉴 틈은 없다. 마부는 점심을 바삐 먹고, 노새들을 재촉해 서둘러 내려간다.

젊은 남자 두 명이 그 물건 중에서 의뢰받은 것을 골라 바구니에 담는다. 마칼루B.C로 갈 예정이란다. 이들은 전문적인 짐꾼으로 하루에 여러 번을 왕복해야 돈벌이가 된다. 무거운 짐을 지고도 뛰어가듯 간다.

점심을 다 먹을 때까지 도착하지 않은 스태프들이 서너 명에 달한다. 어제 술을 마신 사람들이다. 벰바 셰르파는 그들을 기다리고, 나머지는 세숑 카르카를 향해 출발했다.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오늘은 날씨가 좋다. 청명한 하늘과 밝은 햇살 아래 히말들도 모처럼 산뜻한 자태를 뽐낸다. 그러나 오후가 되자 다시 구름이 뭉치며 시야를 가린다. 두 시간을 올라가자 세숑 카르카(4,630m)가 나타난다.

넓고 평평해서 텐트를 치기에 적당하다. 파노라마 뷰도 멋지다. 구름에 가린 마칼루봉은 살짝살짝 보이다 이내 구름 속에 숨는다. 호흡이 가빠지고 헛기침이 자꾸 나온다. 쌍화차와 도라지차를 섞어 마시자 좀 나아졌다.

일부 스패프들은 또 술을 마신다. 벰바 셰르파가 통제에 애를 먹는다. 한 사람이 낙오하면 그 피해는 전체에 돌아간다. 자기관리에 엄격해야 진정한 프로다.

메락카르카(4,100m) 위쪽의 나무다리를 건너는 노새들.
11월 12일 눈사태… 그리고 무수한 별들

지난밤 근처 설산에서 눈사태가 났다. 우레와 같은 큰소리가 예닐곱 차례나 이어졌다. 포카리가 터진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머리칼이 쭈뼛쭈뼛 선다. 큰물이 들이닥치는 징후가 있나 한동안 귀를 쫑긋 세웠다.

과거 랑탕 지역의 랑탕마을은 위쪽의 포카리가 터지면서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마칼루 지역은 랑탕 지역과 같은 포카리가 훨씬 많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스태프들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공포심을 이기려고 애를 쓴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새벽에 작은 눈사태 소리가 두 번 더 들렸다. 밖을 나가보니 구름은 없고,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반짝인다. 별들의 향연을 지켜보노라니 우주 한가운데 서 있는 착각마저 든다.

마칼루B.C(4,870m)를 향해 출발했다.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에 마칼루봉과 주위의 히말들이 자태를 뽐낸다. 마칼루B.C는 세 번째 방문인데 이렇게 맑은 날은 처음이다. 바람도 없고 조용하다.

마칼루B.C를 지나서 셀파니콜로 향하는 스태프들.
마칼루B.C에 도착했다. 크고 작은 허름한 건물이 대여섯 채다. 현지인 부부가 운영한다. 랑마레 카르카와 양리 카르카의 로지도 여주인의 친정 식구들 소유다. 이 지역의 티하우스와 로지는 대부분 이 집안의 것이다.

점심을 먹고 스위스 베이스캠프(5,150m)로 향했다. 룽다를 걸어놓은 한 캠프지를 지나자 왼쪽 산에서 굴러 떨어진 돌들이 경사진 너덜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너덜지대는 범위가 넓고, 까마득히 길게 이어진다.

길은 없고, 사람이 다닌 흔적만 있다. 각자 요령껏 돌을 붙잡고, 타고, 넘으며 돌파해야 한다. 일반 산길에 비해 몇 배의 힘이 든다. 이 돌들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안정화되긴 했으나 불안정한 돌도 있다.

자칫 손이 미끄러지거나 발을 헛디디면 어디를 다쳐도 다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게다가 위쪽에서 낙석과 얼음이 불시에 떨어질 위험이 있다. 손과 발에 정신을 집중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잘 판단해야 한다.

세 시간의 악전고투가 이어졌다. 숨은 턱까지 차고, 온몸은 땀으로 흥건해졌다. 스태프들은 앓는 소리를 내며 안간힘을 쓴다. 돌탑을 발견하고, 그 옆에 텐트를 쳤다. 근처에 물이 없어 상당히 먼 그로시아까지 가서 구해 왔다.

스위스캠프를 지나 너덜지대를 통과하는 스태프들.
클라이밍 셰르파가 장비를 점검한다. 에베레스트봉, 안나푸르나1봉 등을 등정한 전문가다. 이제부터 그의 책임하에 산행을 진행한다. 6,000~7,000m의 피크봉 등반 허가는 자격증 있는 클라이밍 셰르파의 고용이 의무사항이다.

해발 5,200m 지점이라 고소 증세가 살짝 온다. 수유차를 마시니 좀 나아졌다. 수유차는 버터와 소금, 짬빠가루를 섞어 만든다. 힘든 하루였다.

11월 13일 밤새 고소증세에 시달려

고소증세가 왔다 갔다 하는 통에 잠을 설쳤다. 어제 말려서 뽀송뽀송했던 침낭은 벌써 축축하다. 밤새 소변을 네 번이나 보았다. 소변 배출이 원활하다는 건 고소 적응이 순조롭다는 좋은 신호다.

셀파니콜 하이캠프로 향했다. 네다섯 시간쯤 걸린다고 예상한다. 중간에서는 물을 구할 수 없어 점심은 캠프지에서 먹기로 했다. 오늘도 너덜지대는 계속된다. 오르락내리락 등고선을 따라 진행한다.

한 시간쯤 걸어가자 재패니스 캠프가 나온다. 야영하기에는 좋은 지형이지만 물은 없다. 너덜지대의 북쪽 사면은 눈이 안 녹아서 상당히 미끄럽다. 안전을 위해 엉금엉금 기다시피 천천히 진행했다.

스위스캠프(5,150m) 못미처 너덜지대 캠프에서 촬영한 캠프지의 전경사진.
반대편에서 오는 스위스 남녀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동행은 가이드 한 명과 포터 두 명이다. 스위스 사람들은 고산 등반에 능숙하다. 아일랜드B.C에서 스위스 여성이 가이드만 대동하고 등정하는 걸 본 일이 있다.

너덜지대의 오르막길이 시작됐다. 스태프들은 배가 고픈데다 피로가 누적되어 있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 뒤처지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올라가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각자 준비한 비상식으로 기력을 보충했다. 스태프들은 럭시로 뭉친 짬바가루를 꺼내 먹는다. 권하기에 먹어보니 술맛과 함께 쓴맛이 난다. 추위를 이기고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적절한 간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오를 넘어서야 셀파니콜 하이캠프(5,688m)에 도착했다. 앞쪽에는 마칼루봉이 보이고, 뒤쪽에는 아이스 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의외로 바람 한 점 없이 조용하고 포근하다. 힘들게 올라왔으니 좀 쉬라는 배려로 느껴진다.

셀파니콜(6,180m)을 오르다 아이스 지대에서 촬영한 마칼루의 여명.
텐트를 치고, 늦은 점심을 먹은 후 클라이밍 셰르파와 스태프들은 로프를 챙겨 셀파니콜 고개마루턱으로 향한다. 루트를 탐색하기 위해서다. 당장 불필요한 짐을 선별해서 가져간다. 미리 갖다 놓으면 내일의 진행이 수월해진다.

고도가 높아 고소가 느껴진다. 열도 조금 있다. 타이레놀을 먹고 한참을 누워 있으니 몸이 개운해진다. 고소는 각자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증세가 완화된다면 그것이 정답이다.

해가 지고 마칼루봉이 어둠에 잠긴 뒤에야 셀파니콜에 갔던 스태프들이 돌아왔다. 거리가 상당히 멀고, 아이스 지대는 위험하다고 한다. 그러나 등산화에 아이젠을 착용하면 돌파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고 전한다. 좋은 소식이다.

셀파니콜은 세 번째 도전이다. 예기치 못한 기후와 컨디션 난조로 두 번 포기한 적이 있다. 이번엔 제발 허락해 주십사 히말의 신께 기도한다.

셀파니콜 고개 마루턱에서 촬영한 파노라마 사진.
11월 14일 곳곳에 크레바스… 길 벗어나면 죽음

셀파니콜(6,180m)을 넘는 날이다. 기대와 우려가 반반이다. 눈이 내린다면 엄청난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설쳤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밖을 나가 보니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조짐이 좋다.

새벽 4시경에 출발했다. 목표하는 캠프지에 여유롭게 도착하려면 일찍 출발하는 게 좋다. 길은 명확하나 돌투성이고, 눈까지 쌓인 곳이 있다. 5,000m 후반 고산의 너덜지대를 랜턴에만 의지해 가자니 쉽지 않다.

미리 짐을 고갯마루에 갖다 놓은 스태프들의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고도를 높이자 빙하지대가 나타난다. "눈 밑에 크레바스가 곳곳에 숨어 있으니 절대로 길을 벗어나지 말라"고 클라이밍 셰르파가 신신당부한다.

오전 8시경 셀파니콜 절벽에 도착했다. 직벽에 가까운 높이 150m가량의 돌산이다. 로프와 암벽용 자일을 여러 동 준비해 갔으나 꺼낼 필요는 없었다. 뜻밖에도 튼튼한 와이어와 고정 로프 여러 개가 이미 설치되어 있었다.

콩메딩마를 향해 내려가는 스태프. 주위에는 포카리가 많다.
앞서간 이들이 뒷사람을 위해 남겨놓은 배려에 감사할 뿐이다. 스태프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도 로프를 잡고 노련하게 절벽을 기어 올라간다. 암벽은 올라가는 길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 위험하다.

내려가는 길에도 고정 로프가 깔려 있었다. 낙석의 위험이 있어 두 명씩 차례로 내려갔다. 일제히 하강하다 낙석이 발생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시간은 제법 걸렸으나 모두 무사히 하강을 마쳤다.

압도적인 풍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방이 설산으로 둘러싸인 광활한 분지형 빙하지대가 펼쳐졌다.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그러나 곳곳에 크레바스가 숨어 있어 위험한 곳이다. 반사되는 햇빛이 강해 고글을 썼다.

빙하지대를 걸어 웨스트 콜(6,143m)로 향한다.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을 따라 2km 이상을 걸었다. 곳곳에 입을 벌린 크레바스가 보였다. 날씨가 좋아 다행이었다. 눈이 내렸다면 길을 찾기 어려워 크게 고전했을 것이다.

웨스트 콜은 오르막이 20m 정도, 내리막은 200m쯤 된다. 내리막길은 거의 직벽으로 셀파니콜 못지않게 위험했다. 웨스트 콜을 지나자마자 맞닥뜨린 돌아가는 얼음길이 특히 위험했다. 길이는 500m에 가까웠다.

오른쪽이 얼음 경사지였다. 그 끝은 높이가 100m 이상의 급경사고, 아래에는 긴 크레바스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미끄러지면 시체도 못 찾을 판이라 소름이 돋았다. 오후 3시경 바룬체B.C(5,400m)에 도착했다.

출발부터 11시간이 걸린 강행군이었다. 세 번의 도전 끝에 셀파니콜을 넘어 만감이 교차한다. 좋은 날씨를 허락한 히말의 신에게 감사를 드린다.

.바룬체B.C에서 촬영한 카리히말(6,985m)의 일출.
11월 15일 강행군에 스태프들 녹초

해발 5,000m 이상에서 삼사일 강행군했더니 스태프들의 컨디션이 엉망이다. 얼굴은 햇빛에 검게 그을리고, 푸석푸석 부어 있다. 황태포는 부기를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아침으로 황태 국을 끓여 먹고 출발했다.

개활지를 끼고 내려가다 오른편에서 낯익은 길을 발견했다. 암푸랍차 B.C(5,527m)를 지나고, 암푸랍차 라(5,845m)를 넘어 추쿵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이다. 길이 험해서 로프를 깔고 올라가야 한다. 내리막은 직벽이다.

3일 후 올라갈 예정인 메라피크 봉우리(6,476m)가 살짝 보인다. 2007년 쿰부 일대를 돌면서 하이캠프(5,870m)까지는 올라갔었다. 그러나 강한 바람과 추위를 무릅쓰고 장시간 일몰을 촬영한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는 40대여서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지독한 몸살에 걸려 오한과 재채기가 끊이질 않았다. 감기약을 서너 종류 먹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다음날 새벽에 메라피크를 올라가다 약에 취해 어지러워서 결국 돌아서고 말았다. 전체적으로는 내려가는 길이라 쉽게 생각했으나 오산이었다. 내리막길이 많았으나 오르막길도 적지 않았다. 거리도 상당히 멀었다. 누적된 피로가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쉐도포카리에서 점심을 지어 먹었다.

햇빛이 빛나고, 살짝 바람이 있어 얼른 침낭을 꺼내 말렸다. 텐트에서 야영하면 입김과 대기 중의 수분이 이슬로 변해 침낭에 떨어진다. 침낭이 축축하면 수면의 질이 떨어지므로 기회가 날 때마다 침낭을 말리는 게 좋다.

쿡이 간식으로 팝콘을 만들어 내왔다. 산행에서 쿡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간식과 끼니를 다양하게 제공하는 일은 쉽지 않다. 맛과 영양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재료가 한정된 상황에서는 사실 까다로운 일이다.

이 지역은 이름 모를 피크봉이 많다. 크고 작은 포카리도 산재해 있다. 다만 카메라에 담기에 구도와 풍광이 썩 좋지는 않다. 매번 좋을 수는 없다. 메라피크를 위해 한 템포 쉬어가는 길이라 생각한다.

콩메딩마 포카리(4,948m)까지 가려고 했으나 도중에 진행을 멈추고 이른 시간에 야영을 준비했다. 스태프들이 몹시 지쳐 있었다. 벰바 셰르파도 고소에 몸살기까지 있어 약을 먹고 있다. 나도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지나온 과정을 노트에 기록해야 하는데 정신없이 졸음이 쏟아진다. 강행군의 후유증이다. 텐트에만 들어오면 꾸벅꾸벅 졸기 바쁘다. 그래도 일정은 좀 빠듯한 편이 낫다. 느슨하면 긴장이 풀어진다.

셀파니콜을 돌파하면서 메라피크에 대한 기대감은 더 커졌다. 인생은 짧다. 다시 기회가 온다는 보장은 없다.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거듭 다짐한다.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칭찬하다(4)
허가 없이 전재할 수 없습니다:>골드스파클뉴스 » 악마 같은 크레바스를 넘어 셀파니콜을 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