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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세월, 온 국민 얼굴 닦아주며 성장…연 매출 1300억 기업으로 [남돈남산]

80년 세월, 온 국민 얼굴 닦아주며 성장…연 매출 1300억 기업으로 [남돈남산]

박병대 ‘송월’ 회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제공=송월>
수건 제조·판매로 연 매출액 약 1300억원. 우리나라 수건 시장에서 1위를 달리는 수건 명가. 브랜드 ‘송월타올’로 잘 알려진 주식회사 ‘송월’ 이야기이다.

송월은 1945년 출발해 우리나라 수건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한 수건 생산기업이다. 기업이 설립돼 10년을 버티기도 힘든 우리나라 산업 현실에서 송월은 79년이나 존속해온 정통 제조업체이다.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품질은 떨어지는 외국산 수건이 우리나라 수건 시장에 치고 들어올 때도, 고급 콘셉트로 무장한 해외 브랜드가 무차별적으로 공격할 때도 송월은 꿋꿋하게 우리나라 수건 시장을 지켜왔다.

수건은 사람들이 보통 매일 쓰는 필수품 중 하나로, 수건 뒷면에 부착된 라벨을 자세히 보면 ‘송월타올’ 혹은 ‘송월타월’이라고 써 있는 경우가 많다. 수건은 기업 행사 혹은 지인들이 자신들의 경조사 때 답례품으로 사용되곤 하는데, 송월타올이 생산한 수건이 압도적으로 많다.

송월은 기업이나 브랜드로부터 의뢰받아 수건을 맞춤 생산(OEM) 해주기도, 자체 브랜드로 판매하기도 한다. 2022년 기준 매출액 1293억원, 영업이익 124억원으로, 우리나라 가정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수건을 송월이 생산한다.

송월은 역사가 긴 만큼 여러 시행착오도 겪어왔다. 대표적으로 브랜드명이 송월타올, 송월타월로 혼재돼 사용됐는데, 송월타올로 정리했으며, 사명은 ‘송월’이다. 수건, 샤워가운, 때밀이 타올, 발 매트 등을 생산한다. 대부분의 매출액은 수건에서 창출된다.

송월은 어떻게 출발했으며 어떻게 성장해올 수 있었을까. 경상남도 양산에 위치한 송월 본사에서 박병대 송월 회장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회사부터 살리고 보자”
1992년 회사 부도 직전
박병대 회장 구원투수로
“1992년 여름, 백부님(박동수 창업자)께서 급히 친인척들에게 가족회의를 소집하셨어요. 올해 추석이 지나고 회사(송월)가 부도날 것 같다며 저한테 회사 일을 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회사 설립 후 당시 제 회사를 운영 중이었는데, 만사 제쳐두고 송월 경영에 투입됐죠.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박병대 송월 회장>

송월은 1945년 박동수 전 회장이 동생 찬수 씨(박병대 회장의 아버지)와 함께 창업한 회사다. 부산 동구 범천동에 위치한 ‘적산가옥’을 불하받아 그 주택에 양말 염색 공장을 차리면서 출발했다. 적산가옥은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광복하면서 일본인들이 두고 간 주택을 말한다. 이후 두 형제는 1949년 목직기 5대를 구입 후 ‘송월타올공업사’라고 간판을 걸고, 그해 10월 수건 제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송월이 첫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송월은 달빛을 품은 소나무라는 의미를 지녔다. 박동수 창업자는 ‘소나무처럼 한결 같은 태도’를 경영 철학·신념으로 내세웠으며, 그 철학을 사명에도 담았다. 경남 양산 본사에 들어서면 건강하게 잘 자란 소나무가 있다.

경남 양산에 위치한 ‘송월’ 본사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소나무. 수건 제조 명가 ‘송월’은 달빛을 품은 소나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진=신수현 기자>
큰 문제없이 성장해오던 것처럼 보였던 송월은 1992년 여름 위기에 처했다. 문 닫기 직전이었다. 외부에서 알려진 것과 달리 1992년 송월은 자금 돌려막기를 할 정도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박동수 창업자이자 박 회장의 큰 아버지가 긴급 가족회의를 열었고, 그해 가을 회사가 파산할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에 들어와 보니 재무구조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회사부터 살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부채비율이 너무 높았고 사채를 많이 끌어쓴 상태였어요. 당장 부도가 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재무구조 개선이 시급했어요. 매출액을 늘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고, 비용 절감에도 박차를 가해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박 회장은 연 매출액보다 3배가량 많았던 부채 규모를 확 낮췄고, 비효율적이었던 공장 시스템도 개선해나갔다. 회사가 정상화됐고, 박 회장은 1997년 1월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하지만 또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한국 경제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렸던 외환위기(IMF) 사태였다. 이후 박 회장은 자신이 설립한 회사를 정리했다.

“1997년 11월 시작된 외환위기(IMF) 사태는 정말 심각했어요. 중소·중견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줄도산할 정도였습니다. 송월도 자금줄이 막히면서 다시 한 번 큰 위기에 처하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갖고 있던 부동산을 처분했고, 회사를 살리기 위해 사력을 다했습니다. 당시 제 집에 소위 말하는 압류 딱지 스티커(빨간 딱지)가 곳곳에 붙었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며 좌절도 했습니다.”

1998년 송월은 결국 화의개시에 들어갔다. 화의는 파산, 부도 위험에 직면한 기업이 법원의 중재를 받아 채권자와 채무 변제협정을 체결한 후 파산을 피하는 제도이다. 박 회장과 직원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회사를 살리는 데 최선을 다했지만 힘겨웠다.

대리점주들이 나서면서 자금에 숨통이 틔었다.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등 돌렸을 때 대리점주들이 급한 불을 끄라며 약 40억원을 빌려줬다. 박 회장이 그동안 보여준 경영 능력과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대리점주들이 합심하고 나선 것이었다. 박 회장이 대리점 조직과 상생하고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송월과 대리점주들의 모임을 1993년 조직하고, 대리점주들에게 진심을 다한 결과였다.

“지금이나 그때나 크게 다르지 않은데 송월의 핵심 판매경로(유통망)는 대리점입니다. 그때는 거의 100% 대리점을 통해 송월 수건이 판매됐어요. 당시 송월 수건을 판매하던 대리점이 100~110개 정도였던 것 같아요. 1998년 대리점주들이 각자 형편껏 돈을 모아 약 40억원을 갖고 왔더라고요. 회사가 부도나면 은행 거래가 안 되는데, 이 모습을 본 은행에서 송월을 믿어주기로 했습니다.”

경남 양산에 위치한 ‘송월’ 공장에서 생산 중인 수건에 자수가 새겨지는 모습 . <사진=신수현 기자>
2003년 송월은 화의를 졸업했다. 송월이 위기를 겪던 외환위기 동안 여러 수건제조 업체들이 하나둘 없어졌다. 이후 송월은 2005년 공장 설비 확충 등을 위해 경남 양산으로 공장을 이전했고, 제조 원가 절감과 해외 시장 공략 등을 위해 2007년 베트남에 공장도 설립했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시기에 베트남 정부가 해외 기업들에게 공장 운영을 엄격히 제한했는데, 그때도 송월 베트남 공장은 정상 가동됐다.

“코로나19 발발 초기는 물론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베트남 정부가 자국에서 공장을 운영 중인 해외 기업들에게 공장 운영과 관련해 제재를 세게 가했어요. 직원들이 공장에서 계속 머물면서 공장에서 먹고 잘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공장 가동을 중단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때 공장 가동을 멈춘 기업들이 많아요. 송월은 직원들이 숙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발 빠르게 대처했습니다.”

신사업 등 신성장 동력도 확보
“100년 넘어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송월은 정통적인 제조업체에 국한돼 있지 않고 새로운 시도도 하면서 새롭게 도약하고 있다. 지난해 캐릭터 ‘타올쿤(Towelkun)’을 선보인 게 대표적이다. 타올쿤은 송월타올의 생활용품 브랜드로, 송월은 수건 원단을 활용해 의류, 모자, 슬리퍼, 주방용품, 문구류, 가방 등 다양한 타올쿤 제품을 출시했다. 박병대 회장의 아들인 박창환 송월 이사가 타올쿤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송월타올의 캐릭터 ‘타올쿤’. <사진 제공=송월>
지난해 송월이 서울 성수동에서 개최한 ‘타올쿤’ 팝업스토어 내부 모습. <사진 제공=송월>
지난해 박 이사는 서울 성수동에서 타올쿤 팝업스토어도 개최했다. 또 부산 수영구 민락동에 위치해 광안대교가 한눈에 보이는 복합 문화 공간 ‘밀락더마켓(Millac the Market)’에 팝업스토어를 열고, 타올쿤이 새겨진 여러 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송월은 계열사 ‘송월테크놀로지’를 통해 탄소복합소재를 개발·생산하는 사업도 하고 있다.

지난해 송월이 부산 수영구 민락동에 위치한 복합 문화 공간 ‘밀락더마켓’에서 개최한 ‘타올쿤’ 팝업스토어 내부 모습. <사진 제공=송월>
“송월이 1945년에 출발해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내실을 탄탄히 하고, 기업 경영 목표를 숫자 즉 매출액 증대가 아닌 고객 신뢰 확보에 집중한 데 있습니다. 경영자가 기업 목표를 매출액 증진에만 집중하면 직원들이 목표 숫자를 달성하기 위해 매출액 달성에만 혈안이 되거나 비용 절감을 내세워 하청 업체에 소위 갑질하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송월은 불량률 절감, 고객 만족도 증진 등 본질에 더 집중할 것입니다. 그것이 100년 기업을 넘어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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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팩토리5F’에서 ‘송월타올’ 의 수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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