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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과서 개고생하다 피부과 가니 천국”…의사들 ‘피·안·성’ 쏠림 부추기는 실손보험

“소아과서 개고생하다 피부과 가니 천국”…의사들 ‘피·안·성’ 쏠림 부추기는 실손보험

서울의 한 대학병원 소아과의 외래진료실이 환자들로 북적이고있다. 2024.2.21 [김호영 기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A씨는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 소아응급실에서 2년 정도 근무하다 최근 서울의 한 피부과로 자리를 옮겼다. 파트타임으로 피부 레이저처럼 간단한 시술을 하는 그는 경험을 쌓은 뒤 피부과 개원까지 고민하고 있다. 그는 “소아과에서 높은 업무강도와 낮은 수가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다 비급여 진료가 많은 미용분야를 경험한 뒤 실제 피부과로 개원한 소아과 전문의 사례가 주변에도 있다”고 귀뜸했다.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의 확대로 급성장한 비급여 진료가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으로 대표되는 인기과로의 쏠림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실손보험은 의료비 가운데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급여항목을 뺀 본인 부담금과 비급여 의료비를 보장하는 보험상품이다. 의사 재량으로 얼마든지 비싸게 책정이 가능한 비급여 항목이 실손보험과 맞물려 17조원 규모의 거대시장으로 팽창하면서, 손쉬운 비급여 진료로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비(非)필수의료 과목과 개원가로 의사들을 빨아들이는 있다는 지적이다.

14일 보건복지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 수는 실손보험이 본격 확대되기 시작한 2010년 2080만명에서 2022년 3565만명으로 71.4% 급증했다. 이 기간 비급여 진료비는 8조1000억원에서 17조3000억원으로 두 배 넘게 뛰었다. 다만 비급여 진료비가 병원마다 제각각인데다 정확한 실태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아 실제 비급여 진료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실손보험은 비급여 과잉진료를 유발하는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병의원들이 실손보험 가입여부를 확인한 뒤 불합리한 과잉진료를 권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50대 B씨는 서울의 한 의원을 방문해 무릎 관절염으로 골수 줄기세포 치료를 권유 받았다. 해당 시술에 필요한 시간은 약 1시간으로 특별한 부작용이 없었지만 1430만원에 달하는 비급여 비용을 실손의료보험으로 보전받기 위해 1박 2일 입원을 권유 받았다. 진료과목을 넘나드는 사례도 있다. 백내장 수술전문 병원 C안과는 고액의 다초점렌즈 비용을 실손보험으로 보전받기 어려워지자 정형외과 의사를 고용했다. 이 안과에서는 골수 줄기세포 무릎주사를 시술하고 실손 보험금을 타냈다.

최근에는 병원이 보험사기단과 유착해 실손의료보험 누수를 야기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C병원 상담직원은 “원하는 성형수술, 미용시술을 80~90% 할인된 가격에 받을 수 있다”며 “도수치료를 받은 것처럼 서류를 발급하는데 내원하지 않아도 보험금 청구가 가능하도록 영수증 발급해드린다”고 환자를 꼬득였다. 도수치료 명목으로 성형수술(코, 쌍커풀 등)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보험브로커는 환자들을 병원으로 끌어오는 역할을 맡았다.

이렇듯 실손보험이 유발한 비급여 풍선효과 탓에 비급여는 곧 의사들의 실제수입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정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혼합진료 금지를 통한 실질의료비 절감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문의 과목별 연간소득은 안과(3억8918만원)가 가장 높고, 정형외과, 신경외과, 피부과, 재활의학과가 뒤를 이었다. 같은 기간 비급여 진료율은 의원급을 기준으로 재활의학과(42.6%), 안과(42.3%), 정형외과(36%), 신경외과(35.3%) 순이었다. 비급여 진료 비율이 높은 과목과 높은 수익 간의 연관관계가 확인된 셈이다.

비급여 진료확대는 기피과의 의사인력 유출을 부추길 뿐 아니라, 대학병원을 떠나 개원을 결정하는 주요 배경이 되기도 한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의료기관 종별 비급여 진료비중은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에서 각각 39%, 42.3%에 불과한 반면, 병·의원급에서는 70% 중후반대에 달한다. 종합병원 의사의 2배 수준인 개원의 연 소득의 상당부분을 비급여 항목이 견인하고 있다. 2018~2022년 사이 새롭게 문을 연 일반의원 5곳 중 1곳 이상이 피부과라는 점도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싣는다. 특히 실손보험으로 비급여 시장이 커지면서 의대를 졸업하고 전공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개원가로 나오는 일반의 비율도 급증했다.

의료계에서는 의대정원을 늘리더라도 실손보험에 기반한 비급여 진료를 통제·관리하지 못하면 지역·필수의료 분야의 의사인력 공급기반이 지속적으로 취약해질 우려가 높다고 지적한다. 다만 실손보험은 민간 보험사와 국민의 계약사항인 만큼 정부개입이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실손보험이 비급여 팽창의 원인임을 알고도 관리에 소홀해온 점이 문제”라며 “국내에서 실손보험이 도입되던 초기에 환자가 의료비를 인지할 수 있는 본인 부담금이 거의 없는 상품을 내놓으면서 그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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