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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에 필요한 ‘가교 파워’ 외교

윤석열 정부에 필요한 ‘가교 파워’ 외교

윤석열 정권은 사실상 대북정책이 없다. 김정은 정권도 대남정책이 없다. 남북 정권이 남북 합의에서 이탈하고 있다. 지금 절실히 필요한 것은 중장기 한반도 전략이다.1월31일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남북한 모두 자기 역사를 부정하고 나섰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가짜 평화’라고 주장한다.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북한과 합의해온 사안도 부정했다. 남한의 역대 정부가 다져오고 헌법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평화적 통일’이다. 윤석열 정부가 9·19 남북 군사합의를 사실상 파기한 것은 역대 정부가 만들어놓은 평화통일로 가는 궤도에서 완전히 이탈한 것이나 다름없다.
윤석열 정부에 필요한 ‘가교 파워’ 외교
북한도 마찬가지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부터 북한의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2021년 1월 노동당 제8차 당대회부터 북한의 역대 정권이 지상 과제처럼 강조해온 통일 노선을 약화시키기 시작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부터 대남 비난 강도를 높였다. 지난해 12월 노동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지난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남한과 적대적 관계를 선포했다. 김일성 주석 시절부터 이어온 통일 노선에서 이탈했다.
윤석열 정부에 필요한 ‘가교 파워’ 외교
물론 남한 역대 정권의 대북정책이나 김일성 시대부터 이어온 북한 대남정책은 명분과 실질 사이에서 괴리가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는 명분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남한 반공주의 정권도 비록 말에 그쳤을지라도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통일 추구를 내세웠다. 평화통일이라는 명분을 놓치면 정권의 취약한 정통성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윤석열 정부에 필요한 ‘가교 파워’ 외교
북한도 대남 적화통일 야심을 감추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남한과 국력 차이가 발생한 뒤부터 적화통일 야심보다 평화통일을 내세웠다. 남한과 결이 다르지만, 체제 생존을 위한 모색이 북한 정권에도 중요했다.
남북 모두 기존 합의에서 이탈
하지만 윤석열 정권은 사실상 대북정책이 없다.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우지만 ‘힘만 쓰는 평화’에 그칠 뿐이다. 근시안적 외교·안보 노선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정책을 비판해 정치적 지지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발상이 그 출발이다. 정략적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에 치우친 대외정책을 펴고 있다. 냉전 시대 회귀로, 시대를 거스른다. 이러한 근시안적 세계관은 소탐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김정은 정권이 폭주하는 까닭에 순간적인 반사이익을 얻을 수는 있지만, 반도 국가의 숙명을 극복하기 위한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김정은 정권도 대남정책이 없다. 핵폭탄급 말 폭탄만 있을 뿐이다. 북한이 자신들의 정부 수립 이후 추구해온 노선을 포기한 것은 단기적 목표 달성에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남한과 관계를 ‘교전 중인 두 개의 적대국가’로 규정한 것은 2021년 제8차 당대회 때 설정한 목표를, 2026년 제9차 당대회 때 달성하기 위해 내부 긴장감을 조성하겠다는 발상이다. 수직적 통제에 의존해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을 든든한 버팀목으로 삼는다. 북한 정권도 냉전시대로 회귀해 진영 대결을 촉진하는 정책을 강화할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근시안적 세계관 역시 소탐대실로 이어질 것이다. 대남 적대 의식 고취로 제9차 당대회 목표에 근접할 수는 있으리라 보인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적대적 대결 구도 심화는 북한 생존과 번영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될 터이다.
남한은 다원주의에 기반한 5년 단임제 정부다. 북한은 유일 체제에 기반한 수령 제일주의 체제다. 북한은 2026년까지 현재 정책과 노선을 밀고 나갈 듯하다. 물론 이후에도 자신들이 군사적·경제적 목표를 달성했다는 성취감에 사로잡힌다면 호락호락하게 나오지 않을 테다. 남북 관계를 ‘교전 중인 두 개의 적대국가’로 설정한 북한을 다루는 우리 역량만이 한반도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북한을 다루는 데 강경책과 온건책을 두고 다툴 일은 아니다. 때로는 강경책을, 때로는 온건책을, 때로는 강온책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유연한 정책은 경직된 근육이 아닌 현명한 사고에서 나온다.
현명한 사고가 지정학적 숙명론을 극복하기 위한 유연한 국가전략을 만든다. 한반도에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각축장이 되는 것을 방치하는 게 지정학적 숙명론이다. 반면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가교 국가로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환경을 활용한 국가전략을 수립하면 국가이익과 번영의 극대화가 가능하다.
지금 이렇게 한반도 전략을 짜야 하는 것은 남북 정권이 남북 합의에서 이탈하고 있는 상황, 국제 정세가 한반도에 미치는 강한 영향력, 남한 5년 단임제 정권에서 추진할 수 있는 정책 환경의 한계, 중장기적 국가전략의 필요성 때문이다.
1월2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잠수함 건조 사업 등 군 주요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한반도 전략의 핵심은 지정학적 숙명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일본 같은 해양 세력과 중국·러시아 같은 대륙 세력을 아우르는 네트워크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로 모아진다. 나아가 아세안 국가처럼 인도차이나반도와 인도양을 끼고 있는 나라들과 함께 대륙과 해양을 통해 진출하는 전략, 그리고 대륙을 통해 중앙아시아와 유럽에 진출하는 전략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해양 전략과 대륙 전략, 그리고 해양 세력과 육상 세력 사이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이 역량을 ‘가교 파워(Bridge Power)’라 정의할 수 있다.
엄격히 말하면 지정학에서 숙명론이란 없다. 지정학적 조건을 국가전략에 반영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 차이가 국가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왔다. 해양 파워가 강한가, 대륙 파워가 강한가 하는 이분법이 아니다. 해양이라는 지정학적 조건을 잘 이용하는 나라가 해양 파워를 바탕으로 번영을 이뤘다. 반면 대륙이라는 조건을 잘 이용하는 나라는 대륙 파워를 바탕으로 번영을 이루었다. 대영제국이나 냉전 시기 미국같이 역사적으로 세계 전략을 구사했던 나라뿐 아니라 독일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도 모두 자신들이 처해 있는 지정학을 이용해 국가이익을 추구했다.
하지만 해양과 대륙을 수평적으로 비교하고 해양이 절대적 우위에 있다는 판단은 결국 지정학적 숙명론에 빠지게 된다. 이는 반도 국가는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의 각축장이 된다는 것과 비슷한 숙명론이다.
지정학적 환경이 국가 운명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지정학을 단지 국가전략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해양 국가도 지리적 환경을 활용 못할 수 있고 대륙 국가도 비슷한 경우에 처할 수 있다. 13세기 이전에는 해양 국가들이 해양력을 활용하지 못했지만, 대륙 국가들은 말을 이용해 대륙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했다. 대항해 시대 이후에야 해양 국가들은 바다 활용을 극대화해 대륙으로 진출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해양 파워가 우세한 시기가 있었고, 대륙 파워가 맹위를 떨치던 시대도 있었다. 그렇다면 한반도가 접하고 있는 육지와 대양이라는 두 영역을 연결해 지정학적 조건을 국가이익과 미래 발전 전략에 맞게 재구성하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이런 반도 국가의 역량을 가교 파워라고 할 수 있다.
지정학적 숙명론을 극복하고 가교 파워를 만들어가는 것은 대한민국을 책임지겠다는 대통령이나 정당의 사명이기도 하다. 지난해 5월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에서는 해양 파워인 미국과 대륙 파워인 중국이 그동안의 대결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마련했다. 가교 파워를 형성하고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대륙과 해양의 정세를 민감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지정학적 숙명론 극복하기 위한 노력
한국전쟁 이후 탈냉전 역사를 맞이하면서 최근 30년 동안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박근혜·문재인 정부 등 역대 정부는 정도 차이는 있지만 지정학적 균형을 위한 전략을 구사했다. 가령 2015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중국 톈안먼 망루에 선 것은 지정학적 균형을 위한 시도였다. 하지만 그 후 일본 아베 총리가 한국이 중국에 치우치고 있다는 ‘중국경사론’ 프레임으로 대미 공공외교를 펼친 것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11월 방미 때 중국경사론이라는 공격 앞에서 무참히 허물어졌다. 톈안먼 망루에 섰던 대통령 박근혜의 시도는 실패했고, 사드 배치로 귀결되었다.
숙명적 지정학 극복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는 저평가되고 있다. 숙명의 지정학을 극복하기 위한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의 균형 외교와 포용 정책도 끊임없이 이념의 잣대로 평가 절하하는, 편향적인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해방 이후 지정학에 대응하는 능력 부족과 남북 대결은 극복 불가능할 것 같은 코리아 리스크를 만들었다. 그런데도 탈냉전 이후 지난 30년간 세계 속에 한국 위상을 높여왔고, 선진국 문턱을 넘어섰다. 이제 한반도 지정학은 가교 파워를 형성해야 하는 시기로 접어들었다.
지난해 8월19일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일본 총리가 만났다. ©공동취재
한반도가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충돌하는 각축장이 되는 것은 숙명의 지정학이 초래하는 최악의 상황이다. 고전적으로 본다면 반도는 해양 파워와 대륙 파워가 맞서고 충돌하는 문명의 대척 선이다. 이 대척 선에서 한국의 현대사를 들여다보면 공산주의 진영과 자유주의 진영으로 진영 대결 구도가 형성되어 언제라도 충돌할 수 있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했다.
유연하고 능동적인 외교로 주변국들이 추구하는 정책의 차이를 넘나드는 외교를 펼치는 게 가교 파워를 형성하는 길이다. 이분법은 강경책과 온건책으로 귀결되면서 국내 정치적 요소와 결합한다. 결국 대외적인 강경 노선이 득세하면서 외교 실종으로 이어진다.
한반도 평화 정착은 가교 파워가 추구하는 목표이지만, 가교 파워를 형성할 수 있는 기초 조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평화 정착으로 가는 과정과 비례해서 가교 파워의 역량은 증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 외교를 위해선 무엇보다 한국이 추구해야 할 국가 장기 목표 설정이 필요하며, 평화 외교는 이를 실현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늦어도 2045년 광복 100주년에는 평화와 통일로 하나 된 나라(One Korea)로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단단히 다지겠다고 약속합니다”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2019년 광복절 기념사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 우뚝 서기 위한 장기 발전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위한 외교를 추진하는 것이 평화 외교의 틀이라고 할 수 있다. 2045년까지는 남북 연합,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항구적 평화 체제, 북·미 관계 정상화, 동북아 다자 안전보장 체제를 구축하고, 2050년에는 남북이 연대해 한반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 평화 외교 콘텐츠이다.
지금처럼 남한은 미국과 일본에,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에 올인하면 지정학적 숙명론에 빠지게 된다. 우리가 강경책과 온건책을 뛰어넘어 북한을 잘 다루는 역량을 갖춰야 하는 것은 그것이 가교 파워를 형성하는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북한이 말 폭탄을 퍼붓는다고 ‘이에는 이, 눈에는 눈’과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도 지정학적 숙명론으로 귀결되고 말 터이다. 가교 파워를 만들기 위해서는 ‘평화적 통일 추구’라는 헌법정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역대 정부의 노력을 성찰하고 존중하려는 자세에서 출발해야 한다.
칭찬하다(46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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