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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어때] 할리우드에서 김치 담그는 그 남자의 영화 ‚ ‘메이 디셈버’

[그 영화 어때] 할리우드에서 김치 담그는 그 남자의 영화 ‚ ‘메이 디셈버’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52번째 레터영화 ‘메이 디셈버’와 배우 찰스 멜튼입니다. ‘메이 디셈버’는 20일 현재 영진위 독립예술영화 차트 1위입니다. 저희 신문 화욜자에 찰스 멜튼 방한 기사를 썼는데요, 화욜 날이 밝자마자 친구가 “이 기사는 독자에게 너무 불친절한 것 아니냐”라며 꾸짖는 톡을 보내왔습니다. 헛, 뭘 잘못했지, 싶었는데, 신문 지면에는 문제 없이 인쇄된 찰스 멜튼과 한국계 모친의 사진이 포털 노출 기사에는 들어가 있지 않았더군요(저작권 문제로 추정. 무정하구나, 게티이미지여). 클릭한 독자 입장에서는 “사진 하나 없이, 무성의한 기자 같으니”라고 생각하실 수밖에 없죠. 그럼, 할리우드에서 열심히 김치를 담근다는 그의 웃음부터 아래 사진에서 확인해보시겠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미국인, 어머니가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왼쪽이 영화 '메이 디셈버'를 만든 토드 헤인즈 감독, 오른쪽이 배우 찰스 멜튼입니다. 작년 11월 LA에서 같이 찍었네요.

위에 말씀드린 찰스 멜튼의 방한 기사 링크 아래에 붙이겠습니다. 클릭해보시면 멜튼이 어머니 손을 꼭 잡고 있는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김치 얘기도 기사에 있어요. 기사 내용은 알고 이하 레터 따라오시는 걸로요~

“우리 어머니 집안 60년 비법 담긴 맛” 김치 선물하는 할리우드 한국계 배우

저는 ‘메이 디셈버’의 감독 토드 헤인즈의‘파 프롬 헤븐’(2002)을 무척 좋아합니다. 엘머 번스타인의 아름다운 주제곡, 특히 영화 초반부 여주인공의 스카프가 바람을 타고 지붕 너머로 멀리 날아가는 장면을요. 그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거든요. 그녀에게 사랑이란 저 스카프와 같은 거겠구나. 다시 찾는다고 해도 결국 날아가버리겠구나.

‘파 프롬 헤븐'에서 여주인공으로 나왔던 줄리앤 무어와 토드 헤인즈 감독이 다시 만나서 만든 영화가 ‘메이 디셈버'입니다. 그래서 개봉 전부터 이 영화에 관심이 많았고, 자연스럽게 찰스 멜튼에게도 눈길이 갔어요(이런 배우가 한국계라니), 그가 한국 왔다고 해서 일욜 밤에 열일 제치고 달려갔지요.

‘메이 디셈버'는 13살 남학생과 34살 기혼 여교사가 ‘사랑’에 빠졌다고 주장하고, 여교사가 미성년자 성폭행으로 감옥에 가고, 수감 중에 애를 낳고, 접근금지명령 받았는데도 또 만나서 또 낳고, 결국 둘이 결혼하고, 나중에 이혼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네, 모두 실화입니다. 그녀는 2020년에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영화에서 줄리앤 무어가 여교사를, 찰스 멜튼이 남학생에서 중년 남성이 된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실화의 남학생이 처음으로 아빠가 된 게 14살. 쓰다보니 절로 한숨이 나오네요.

17일 오후 8시부터 용산CGV에서 진행된 영화 '메이 디셈버' 대담 장면입니다. 왼쪽부터 통역사님, 찰스 멜튼, 진행 맡았던 백은하 소장님입니다. 제 곰손으로 갤럭시폰 갖고 찍었는데도 그의 훈훈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저는 이 영화가 실화의 선정성에 갇히지 않을 수 있었던 힘 중 하나가 찰스 멜튼의 연기라고 생각해요. 특히 후반부에 나오는 자녀들의 고등학교 졸업식 장면. 멀리서 바라보며 흘리는 그의 눈물에 이 영화 한 편이 그대로 들어있더군요. 지키고 싶었던 것, 잃어버린 것, 잃어버리고도 몰랐던 것, 갖을 수 없었던 것, 찾으려도 찾을 수 없는 것,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것. 그 모든 것을 어쩜 그렇게 잘 표현했는지.

17일 용산 CGV 대담 때 찰스 멜튼이 그 장면을 촬영 첫 날에 찍었다고 해서 좀 놀랐어요. 배우가 처음부터 캐릭터를 철저히 이해하고 체화해서 접근했으니 가능했겠지요.

영화 제목 ‘메이 디셈버'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5월과 12월, 봄과 겨울의 시간 차이처럼) 커플을 표현할 때 흔히 쓰는 어구입니다. 90년대 당시에 실화의 남학생과 여교사를 다룬 황색 언론과 주위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접근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남학생 집안에서도 둘의 관계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어쨌거나 사랑하는 사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우리 애가 원래 좀 성숙하다”며.

둘의 관계를 자극적인 스토리로 소비하는 타인의 관점, 세상의 시선을 보여주는 게 영화에 나오는 나탈리 포트먼입니다. 나탈리 포트먼은 여배우로 나오는데, 둘의 스캔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속 영화에서 여교사 역할을 맡게 됐다며 줄리앤 무어-찰스 멜튼 부부를 찾아오죠. 부부를 관찰하던 나탈리 포트먼은 점점 줄리앤 무어에 동화되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죠.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의 관점을 아주 분명하게 잘 드러냈지 않나 싶어요. 영화를 많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게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런 감독이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요며칠 여러 시사회를 다니면서 또 느꼈습니다.) 애초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 감독도 그렇게 많지 않고요.

대사로도 잘 드러나요. 나탈리 포트먼은 찰스 멜튼에게 “너의 스토리를 말야~”라며 스토리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러자 찰스 멜튼이 말해요. “이건 스토리가 아냐. 내 인생이야.” 한 줄이 다 말해주죠. 세상이 스토리로 소비해온 한 남자의 인생, 파괴되는 줄도 모르고, 잃어버리는 줄도 모르고 미몽에 갇혀 있던 인생. 스스로가 동조자였던 거대한 서커스극.

아래에 트위터 영상 하나 올릴 테니 함 보세요. 매우 희귀한 경험이 되실 거에요. 실화 속 남학생과 여교사 부부가 2018년에 호주 기자를 만나 인터뷰한 영상입니다. 둘의 관계가 어땠는지를 아주 잘 보여줍니다. 저는 보다가 으스스한 기분마저 느꼈네요. 토드 헤인즈 감독도 이 영상을 봤으리라 짐작됩니다. 이 영상이 주는 으스스함이 ‘메이 디셈버'에 잘 살아있으니까요. 아직도 저 남자는 못 보는 것 같지 않나요. 옆에 앉은 여자가 눈 앞에서 쥐고 흔드는 무저갱의 열쇠를.

인간과 인간의 관계란 때론 인간 스스로도 접근할 수 없는 불가해의 심연 같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레터에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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