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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2년 키이우에서] 헤르손 수복 '영웅' 새신랑 "조국 수호 외 선택지 없다"

[전쟁2년 키이우에서] 헤르손 수복 '영웅' 새신랑 "조국 수호 외 선택지 없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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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딜러 하다 러 침공 소식에 재입대, 산전수전 베테랑 중위…군인 부부 인터뷰

'전우에서 연인으로' 작년 19살 차이 부대원과 결혼…전쟁 트라우마, 수면장애·우울증

소총으로 상공 308m 대형드론 격추 기록…"다음엔 크림반도에서 만나자, 우리는 꼭 승리할 것"

전우에서 연인으로
전우에서 연인으로

(키이우=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2022년 8월 24일 독립기념일에 함께 사진을 찍은 시도로우 중위와 루잔스카 병장. 2024.2.19. dk [시도로우 중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키이우=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경험 없는 신병들과 지휘관들만 있으면 몰살당합니다."

데니스 시도로우(49) 우크라이나 육군 중위는 18일(현지시간)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제대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우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다"며 이같이 잘라 말했다.

베테랑 우크라이나군
베테랑 우크라이나군

(키이우=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키이우 시내 쇼핑몰에서 만난 데니스 시도로우(49) 중위가 인터뷰 도중 잠시 건물 밖으로 나와 바람을 쏘이고 있다. 2024.2.19 dk

시도로우 중위는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합병했을 당시 돈바스 지역에서 군사작전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우크라이나군 베테랑 장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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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전 초기 러시아군 폭격에 상당 부분 파손됐다가 최근 보수공사를 마친 키이우 시내의 한 쇼핑몰에서 군인 부부인 시도로우 중위와 그의 부인을 함께 만났다.

바로 전날까지 작전지역에 있던 부부는 이날 잠시 외출 허가를 받은 시간을 쪼개 인터뷰에 응했다.

마주앉은 시도로우 중위의 불그스레한 얼굴 곳곳에 상처가 또렷이 보였다.

이마의 갓 꿰맨 자국은 언제 생겼냐는 물음에 옅은 미소를 띄며 "이틀 전인데, 헬멧을 썼는데도 이렇게 됐다"고 답했다.

최전선인 도네츠크주(州) 리만 지역에서 작전 도중 무인기(드론) 습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고, 이에 직접 미국산 MK-19 유탄발사기로 드론을 격추했다는 것이다.

부인 알렉산드라 루잔스카 병장(30)이 "지금은 정보장교라 부대원들을 따라나설 필요가 없었는데, 굳이 갔다가 이렇게 됐다"며 혀를 찼다.

헤르손 마을 해방
헤르손 마을 해방

(키이우=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2022년 6월 30일 러시아군 포위를 견디고 헤르손주 마을을 해방시킨 직후 기념 사진을 촬영한 시도로우 중위. 2024.2.19. dk [시도로우 중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0년 전 군 생활을 마친 후 자동차 딜러 업체에서 일하던 시도로우 중위는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군이 전면 침공을 감행해왔다는 소식에 곧장 재입대했다.

자포리자의 17세기 전쟁영웅 '이반 보훈'의 이름을 딴 우크라이나 제1특수목적여단에 배속된 그는 지난 2년간 '디케 폴레'(거친 들판)라는 별칭의 제518특수목적대대에서 1개 중대를 맡아 헤르손, 하르키우, 도네츠크, 루한스크 등에서 활약했다.

시도로우 중위가 "M4A1 카빈 소총으로 308m 상공에 떠 있는 대형 드론을 쏴 격추시킨 적도 있다"고 소개하자 부인 루잔스카 병장이 "아마 이번 전쟁 최고 고도 명중 기록일 것"이라고 첨언했다.

이번 전쟁에서 가장 뇌리에 남은 장면에 대한 질문에 시도로우 중위는 전쟁 발발 후 4개월쯤인 지난 2022년 6월 30일을 꼽더니 주섬주섬 펜과 종이를 꺼내 그림을 그리며 그때 상황을 설명해나갔다.

인터뷰
인터뷰

(키이우=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키이우 시내 쇼핑몰에서 만난 데니스 시도로우(49) 중위가 이마의 상처를 설명하고 있다. 2024.2.19 dk

당시 그는 크림반도에 인접한 남부 헤르손주에서 정착촌들을 하나둘씩 점령해오는 러시아군의 진격을 막아내기 위한 작전에 투입됐다.

러시아군이 이바니우카 마을 농장 헛간 건물에 숨겨둔 장갑차 4대를 독일제 기관총 MG42로 무력화한 후 언덕 아래 마을로 내려갔는데, 적군 100여명의 화력에 밀려 다시 농장으로 올라와 자신을 포함한 7명이 함께 포위되는 상황에 몰렸다.

헛간의 해바라기씨를 씹으며 허기를 달래던 시도로우 중대장의 머리에 묘책이 떠올랐다.

그는 기관총 2대를 헛간 뒤에 배치해 방어선을 구축한 뒤 일부 대원들과 몰래 산 능선을 타고 올랐고, 러시아군 진지의 후방에 이르자 기습 사격을 가했다.

이때 미리 약속한 듯 우크라이나군 지원 병력이 도착했고, 시도로우 중위와 대원들은 24시간 만에 포위를 뚫고 러시아군을 격퇴했다.

러시아군의 자주포 공격
러시아군의 자주포 공격

(키이우=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2022년 8월 13일 쿠피얀스크에서 러시아군의 자주포 공격에 루잔스카 병장 등 부대원들이 지하실로 대피해 찍은 영상. 이 순간 지상에 있던 시도로우 중위가 부상을 입었다. 2024.2.19. dk [시도로우 중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시도로우 중위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머릿 속에 지형과 전술이 그림처럼 그려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 전투 열흘 뒤 부대에 루잔스카 병장이 새로 전입해왔다.

시도로우 중위에게는 예전에 '실베르'(은)라는 호출부호(콜사인)를 지어준 절친한 동료가 있는데, 이 동료가 시도로우 중위에게 이어주려던 상대가 바로 루잔스카 병장이었다고 한다.

루잔스카 병장이 맞는 군복을 못찾아 쩔쩔매고 있자 시도로우 중위가 다가가 "옷을 줄여입자"며 차를 태워 시내 수선집으로 데려갔고, 그것이 전쟁 중에 꽃핀 인연의 시작이었다.

"참 신사적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한 루잔스카 병장은 그로부터 두달 뒤인 2022년 8월 13일 하르키우 쿠피얀스크에서 러시아군의 자주포 공격을 받아 전 부대가 생사의 기로에 몰렸을때를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입양한 고양이
입양한 고양이

(키이우=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시도로우 중위 부부가 돈바스 지역에서 구조해 함께 생활하는 반려묘. 2024.2.19. dk [시도로우 중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시도로우 중위가 "어서 피하라"며 부대원들을 전부 지하실에 몰아놓고는 혼자 지상에 남았고, 그 직후 2m 옆으로 포격이 떨어지면서 파편에 튀는 바람에 등에 큰 부상을 입었다.

루잔스카 병장은 야전병원으로 후송된 시도로우 중위의 안위가 걱정돼 밤잠을 이루지 못했고, 곧 연인이 된 둘은 열애 끝에 작년 9월 웨딩 마치를 울렸다. 19살 나이 차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 한참 신혼 생활을 할 시기이지만, 루잔스카 병장은 수면장애와 우울증세를 보이는 남편이 늘 걱정이다.

러시아군과 교전하는 악몽을 꾸다가 부인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잠에서 깨는 일도 있었다.

시도로우 중위는 다행히 심리치료를 받자는 부인의 권유에는 순순히 응하고 있지만, 전역 얘기는 단칼에 자른다고 한다.

인터뷰 내내 눈을 아래로 내리 깔고 있던 시도로우 중위는 "이건 우리의 전쟁"이라며 "우리는 조국을 수호하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다"고 힘줘 말했다.

시도로우 중위는 최근 격전지 아우디이우카에서 우크라이나군이 후퇴한 일에 대해서는 "그런 일에 대해 평가를 내놓을 지위에 있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 "우리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결국에는 승리할 것"이라며 "다음에 당신을 만나는 장소는 크림반도였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시도로우 중위는 "한국인들은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면서도 "나라와 영토를 절대 포기하지 말고 지키길 바란다"고 말했다.

루잔스카 병장은 "얼마 전 조용한 관사에 신혼 살림을 차렸는데, 매일 폐건물과 막사에서 지내다가 평화롭게 생활하려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며 "만약 종전이 온다면, 전쟁 말고는 모르는 우리 군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말을 남기고 남편과 함께 부대로 돌아갔다.

군인 부부
군인 부부

(키이우=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키이우 시내 쇼핑몰에서 만난 데니스 시도로우(49) 중위와 루잔스카 병장 부부. 2024.2.19 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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